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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사설] 어지러운 길거리 행정구호 정비 잘한 일이다

유성구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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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유성구 곳곳에 ‘청정 유성, 렛츠 고 투게더’라는 현수막이나 간판·팻말이 널려 있다. 학교 앞 스쿨 존에도 어린이 보호 관련 구호 대신 ‘청정 유성’이요, 산에도 ‘산불조심’보다 ‘청정 유성’이 먼저다.

전임 구청장이 설치한 행정구호 게시물들이다. 유성구에선 앞으로 이런 행정구호를 아무 데나 붙일 수 없게 된다. 유성구 의회가 어제 본회의에서 ‘유성구 상징물조례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켜 행정구호를 도로시설물 등 영구적인 구조물과 조형물에 붙이는 행위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지자체장이 자신의 행정 운영철학을 담은 구호를 내세우는 걸 나무랄 일은 아니다. 문제는 행정구호를 육교·교각에서부터 도로 펜스·경계석 가릴 것 없이 공공시설물에 무분별하게 부착해 도시미관을 해치고 주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행정구호를 철거·정비하는 일이 반복돼 행정력·예산 낭비가 심각한 지경이다. 유성구만 해도 전임 구청장이 무려 500여 곳에 행정구호를 설치하면서 14억원의 예산을 썼는가 하면, 현 구청장은 이를 철거하겠다며 1차로 1500만원의 예산을 신청했으나 의회에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유성구 의회가 조례까지 만들어가며 이런 병폐를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은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지자체장의 행정구호가 직원의 공직 자세를 다잡고 주민의 화합과 애향심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긴 하다. ‘앞서가는 복지, 살기 좋은 증평’(충북 증평군) ‘세계의 중심 이제는 용산시대’(서울 용산구) ‘변화와 창조, 김해 미래를 위한 대안’(경남 김해시) 같은 구호가 좋은 예다. 그러나 이런 구호는 청사 내부나 공문서, 홍보물 등을 활용하면 될 일이다. 치적(治績)은 정말 일을 잘해서 얻는 것이지, 길거리 구호 같은 전시행정으로 될 일이 아니다.


길거리 행정구호 남발(濫發)은 모든 지자체에서 대동소이(大同小異)하게 벌어지는 현상이다. 다행히 유성구 조례와 관련해 다른 지역에서 문의가 적잖다고 한다. 길거리 행정구호를 없애는 개혁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